결제만으로는 먹고 살기 힘들어요

 

2.14%

2013년 신용카드 가맹점 수수료의 평균치다. (자료: 여신금융협회)

많은 기업들이 눈독을 들이는 숫자이기도 하다. 국내 신용카드 거래액이 연간 약 600조원 정도라고 하니, 단순 계산으로도 연간 12조원이 넘는 수수료 수익이 발생한다.

 

카드이용액

 

2.14%라는 수수료율은 꽤 매력적이다.

물론 초기에 망을 구축하는 것이 쉽진 않지만, 이것만 되면 봉이 김선달 물장사처럼 2.14%의 수수료가 따박따박 떨어진다. 특별히 변동비가 큰 것 같지도 않다. 네트워크 사업에 강점이 있는 IT 기업들이 비용을 확 낮추고 시장을 재편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이 글에서 얘기하고 싶은 것은 국내 카드업의 구조상 이런 혁신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것이다.

  • 소비자에 대한 각종 “혜택” 비용 등을 빼면 신용판매 서비스의 마진은 아주 낮은 수준이며,
  • 카드사의 신용결제 서비스는 신용대출이라는 고수익 사업의 지원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1. 신용결제 서비스는 적자다?

 

몇 년 전 현대카드 정태영 사장이 이런 얘기를 했다.

젖소목장

 

신용카드업에 대한 비유인데, 풀어쓰면 대략 다음과 같다.

카드업이라는게 신용판매(가맹점수수료)로는 점점 돈이 안되서 신용대출(현금서비스/카드론)로 먹고 사는 상황이다. 지금은 신용대출 사업이 나쁘지 않지만, (과거 카드 사태에서 경험했듯이) 항상 부실 리스크가 있다. 따라서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신용판매 수익이 중요한데, 정부가 신용대출로 돈 잘 번다는 이유로 자꾸 가맹점수수료를 낮추라 하니 답답하다.

 

여기서 눈여겨 볼 것은, 신용판매 사업이 적자라는 부분이다.

정말? 2.14%나 받는데? 왜?

정 사장님이 없는 얘길 한 게 아니라면, 수익이 꽤 많은데도 적자라는 것은 그만큼 비용이 많이 든다는 뜻이다. 이는 다름 아닌 카드 사용자들에 대한 마케팅 비용이다. 카드사들은 사용자에게 각종 할인과 적립, 무이자 할부 등 혜택을 제공하는데 경쟁적으로 비용을 쓴다.

결국 카드사는 가맹점으로부터 수수료를 적지 않게 받지만, 그 중 상당 부분을 소비자들에게 돌려주고 있는 셈이다. 왜 이런 이상한 구조가 되었을까? 경쟁이 심해지면 가격이 내려가는 것이 정상인데, 왜 가맹점 수수료는 내려가지 않고 혜택 경쟁이 심해진 것일까?

 

카드 수수료 인하를 요구하는 집회

 

 

그 이유는 결제수단(카드)에 대한 선택권은 가맹점이 아닌 소비자에게 있기 때문이다.

가맹점은 카드사에 수수료를 지불하는 고객이지만, 결제수단(카드)에 대한 선택권이 없다. 그러니 카드사들은 가맹점에게 유리한 조건(수수료 인하)을 제시하기 위해 경쟁할 이유가 없다. 대신 선택권을 가진 소비자를 놓고 경쟁을 한다.  자연히 카드업에서 가격 경쟁은 가맹점수수료 인하라는 형태가 아니라, 소비자에 대한 각종 할인/적립 혜택 확대라는 형태로 일어나게 된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렇게 살짝 비틀어진(?) 수수료 부과 구조 덕분에 카드 상품이 “차별성”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본래 신용결제는 단순한 기능이라 차별화가 어렵다. 특히 우리나라는 카드를 가려서 받는 가맹점이 거의 없기 때문에, 1등 카드(사)나 꼴찌 카드(사)나 기능이나 서비스 커버리지에 차이가 없다. 차별성이 없는 것을 차별화하려면 돈을 들여 마케팅을 해야하는데, 가맹점 수수료 수입에 여유가 좀 있고 굳이 인하할 유인이 없으니 이것이 재원이 된 것이다. 카드사들은 고객군별로 특정 컨셉을 잡아 그에 맞는 “혜택”들을 사서 조합하는 방식으로 여러가지 상품을 만들어냈고, 이를 통해 신용결제 서비스는 비로소 차별성을 확보할 수 있었다.

(현대카드같은 경우, 개별 상품의 혜택보다는 브랜드/디자인에 좀 더 투자했다는 점에서 특이한데, 어쨌든 가맹점 수수료의 일부를 재원으로 차별성을 만들어냈다는 점에서는 비슷하다. 비용을 쓰는 방식과 차별화의 방향성이 달랐을 뿐이다.)

 

 

2. 소비자에게 얼마나 돌려주길래?

 

어쨌든 이런 구조에서는 2.14%를 실질적인 수수료율이라고 보기 좀 어려워진다. 시장에서 경쟁을 통해 소비자의 선택을 받기 위해 기본적으로 지출해야 하는 비용이 있기 때문이다. 그럼 각종 “혜택”이라는 형태로 소비자에게 돌려주는 비용은 카드 사용금액 대비 몇 % 정도나 될까?

카드사별로 정확한 수치를 관리하고 있겠지만, 우리는 추정해볼 수 밖에 없다.

현대카드 ZERO라는 상품을 참고해 보자. 이 상품의 컨셉은 ‘복잡한 혜택들의 평균적인 비용을 퉁쳐서 단순하게 사용금액의 일정 비율로 돌려주자’는 것이다. 우리가 추정하고자 하는 숫자에 좋은 참고가 될 수 있다.

 

zero

 

이 상품의 기본 할인률은 0.7%, 최고 1.5%까지 적용된다. 대충 1% 정도로 봐도 큰 무리가 없을 듯 하다. 전월 사용금액 등 제한조건이 없는 상품의 특성상 할인률을 (적자가 안나도록) 보수적으로 책정했을테니, 실제 카드사들이 소비자에게 혜택으로 되돌려주는 비율은 1%가 넘을 수도 있다. 2.14%에서 1.x%를 빼면 실제 카드사가 가져가는 수수료는 1%가 채 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카드사는 여기서 다시 결제 시점까지의 이자 비용이나, 소비자가 카드대금을 상환하지 못할 리스크에 대한 비용 등을 부담해야 하고, VAN사 수수료도 지불한다. 그리고 남은 부분으로 판관비에 충당한다. 앞으로 외국처럼 사기거래에 대한 입증책임을 기업 쪽에 부담시킨다면 FDS(사기거래방지시스템) 구축 및 운영, 보상에 드는 비용도 크게 늘어날 것이다.

얼추 생각해봐도 남는 것이 많을 것 같진 않다.

 

업계 1위인 신한카드의 영업이익 구성을 한 번 보자. 맨 왼쪽 ’28기’가 2013년이다.

신한카드IS

 

세부 항목이 없는 상황에서 단순화하기가 좀 그렇긴 하지만, 대충 1. 순이자수익에서 8. 금융상품자산손상차손(대손상각비)을 뺀 것을 신용대출 부문의 수익으로 보고, 2. 순수수료수익을 신용판매 수익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 밖에 주요 항목은 9. 일반관리비(판관비) 정도이다.

보시다시피 신용대출 부문의 수익이 신용판매 수익을 압도한다. 2013년 기준 6배가 넘는다.

신용판매 수익이 얼마 되지 않는 이유는 2조원이 넘게 벌어들인 (가맹점) 수수료 수익의 90% 이상을 비용으로 지출하기 때문이다. 고객에게 되돌려주는 할인/적립 혜택의 비용이 여기에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비용을 차감한 순수수료수익 1,668억원으로는 일반관리비 7,109억원의 1/4도 충당하지 못한다.

관리 회계상 기준에 따라 차이가 좀 있을 수 있지만, 신용판매 사업이 ‘적자’라는 얘기는 상당히 근거가 있어 보인다.

 

 

3. 어떻게 손해를 보면서도 경쟁을 하는걸까?

 

아무리 완전경쟁에 가까운 시장이라 해도 모든 기업들이 적자가 나는 상황이 지속되는 것은 납득하기 힘들다. 가격(혜택) 경쟁이 일어나더라도 중장기적으로는 최소한의 이익을 확보하는 수준에서 멈출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신판적자기사

 

카드사들이 이런 적자를 불사한 출혈경쟁을 지속할 수 있는 배경에는 신용대출이라는 수익성 높은 사업이 있다. (카드사의 법적 지위는 여신전문금융회사다. 원래 돈 빌려주는게 업이란 얘기다.)

카드사를 비롯한 제2금융권 신용대출 사업의 핵심은 돈이 급한 상황에서 빠르고 쉽게 돈을 빌려주는 것이다. 은행 가고 서류 챙기고 기다리고 할 여유가 별로 없다. 금리는 별로 중요한게 아니다. 접근성신속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2금융권 회사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어려움은 ‘접근성’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은행처럼 지점이 많은 것도 아니고, 광고 공세는 규모의 경제를 갖춘 소수의 기업 외에는 타산이 맞지 않는다. 대부분은 대출액의 몇 %를 수수료로 지불하는 조건으로 대출모집인을 쓰는데, 이는 비용이 많이 들 뿐만 아니라 역선택, 불법 정보수집 등 여러가지 문제를 발생시킨다.

그런 면에서 신용카드는 최고의 대출 모집수단이다. 일상적인 결제 수단으로 지갑 안에 항상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이다. 회원 가입시 심사를 통해 미리 대출 한도를 부여해놓기 때문에, 카드만 가지고 있으면 즉시 대출이 가능하다. 지점도 광고도 모집인도 필요없다.

이처럼 신용판매를 통해 확보한 고객들을 대상으로 신용대출을 하는 2모작이 가능하다 보니, 카드사들은 밭(고객)을 늘리기 위한 경쟁에 더 적극적으로 임할 수 밖에 없다. 신용판매 부문에 적자가 나더라도 신용대출에서 나는 이익을 실탄으로 보충하여 회원 확보 전쟁을 벌이는 것이다.

 

 

4. 시사점

 

업계에 계신 분들에게는 상식적인 내용을 너무 길게 설명했나 싶긴 한데, 새롭게 결제 시장에 진입하려는 기업 입장에서 시사점을 대충 정리해보겠다.

  • 가맹점수수료 인하는 소비자의 결제수단 선택에 큰 영향을 주지 못한다. 가맹점 확보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결국 소비자들이 사용을 하게 하려면 기존의 카드 혜택 이상을 줘야 한다. 아니면 이런 혜택을 상쇄할 만한 기능적 가치를 만들어내야 한다.
  • 2.14%는 그렇게 넉넉한 수수료율이 아니다. 고객에 대한 현금성 보상(할인/적립)을 비롯하여 절감이 어려운 원가성 비용만 차감해도 남는 것이 많지 않다. 아예 직불 결제 형태의 저비용 모델로 가는 방법도 있지만, 이미 각종 혜택과 후불결제의 편리함에 중독(?)된 카드 소비자들의 행동변화를 유도해야 한다는 숙제가 있다.
  • 카드사가 돈을 벌고 있는 것은 신용판매와 신용대출이 결합된 사업모델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신용판매(결제) 서비스는 거의 무료이기 때문에 이것만 따로 떼어 사업화하기는 쉽지 않다. 카드사의 신용대출같은, 2차 사업모델을 만들어내야 한다. 데이터 기반의 사업이 되지 않을까 싶다.

 

쓰다 보니 ‘카드사의 밥그릇은 넘사벽이다’ 라고 들릴 수도 있을 것 같다. 그 정도까지는 아니고, 당장 쉽게 볼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사실 이런 카드사의 수익 모델에도 점차 균열이 생기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시간나면 따로 한 번 써볼까 싶다.)

  • 일단 최근 몇 년간 가맹점 수수료가 인하되면서 카드 혜택(차별성)이 점차 줄어들고 있다.
  • 커머스 플랫폼들의 발달로 신용카드가 사람들의 소비를 가이드하는 기능(가맹점 입장에서는 마케팅 기능)이 축소되고 있다.
  • 체크카드 등 직불 결제 증가로 신용판매에서 신용대출로 이어지는 밸류 체인이 약화되고 있다.
  • 장기적으로는 P2P 대출이 카드론의 영역을 침범해 들어올 수 있으며, 비트코인처럼 전혀 새로운 저비용 결제 네트워크가 카드 결제 네트워크를 위협할 수 있다.

 

최근 몇 년간 IT 기업들은 PG나 VAN 같은 신용카드업의 인접 사업으로 진입하고 있다. 당장 카드사의 사업 영역을 공략하기는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일단 고객 접점과 가맹점 네트워크, 사업 노하우를 확보한 다음, 위와 같은 변화의 추이에 따라 새로운 영역으로 확장을 모색할 수 있다.

아직 뭐가 어떻게 될 것이라고 예측하기는 이른 것 같다. 다만, 이것이 산업간의 밥그릇 싸움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좀 더 바람직한 방향의 변화가 되었으면 좋겠다. “더 많은 혜택” 이런 식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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