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더 이상 은행에 가지 않는다

최근 ‘핀테크’에 대한 이야기가 뜨겁다.

기술을 통해 기존의 금융업이 미처 해결하지 못했던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리고 있다는 점에서는 반가운 일이지만, 아쉬운 점은 그 논의의 범위가 여전히 지급/결제 영역에만 국한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앞으로 다양한 ‘핀테크’ 기업들이 나타나 기존 금융회사들과의 협업을 통해 금융업의 부가가치를 높이는 선순환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공인인증서나 온라인 결제 외에도 다양한 문제 제기가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고객 접점과 관련하여 은행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에 대해 얘기해볼까 한다.

 

 

엄마 은행 좀 들렀다 갈께~

 

은행, 옛날 어머니가 외출하실 때 가장 많이 언급한 장소가 아닌가 싶다. 어디 간다고 구체적으로 말씀하시기 귀찮아서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그래도 그런 핑계가 어색하지 않을 만큼 당시 은행 지점은 지역 주민들이 일상적으로 들르는 곳이었고 오후가 되면 늘 사람들로 붐볐다.

어머님들이 은행에서 보는 일이 별로 특별했던 것도 아니다. 현금을 넣거나 찾고, 공과금 납부하고, 여기저기 돈을 보내고, 그도 아니면 통장 정리 후 잔고를 확인하는, 현재 우리가 인터넷 뱅킹을 통해 하는 일들을 지점에서 하셨던 것이다.

사실 이런 일상적 거래들은 은행 지점의 임대료나 인건비 등 제반 비용을 생각해보면 이익이 되지 않는 일이다. 이런 단순 거래가 지나치게 많은 경우, 개별 지점 입장에서는 영업에 걸림돌이 되는 면도 없지 않았다.

 

모바일뱅킹

 

 

2000년대 들어 이런 고민은 해결되는 듯 보였다. 고객들이 단순 업무를 인터넷/모바일 뱅킹으로 처리하기 시작하자 지점의 업무 부담이 다소 줄어든 것이다. 은행들은 “이왕 이렇게 된 것 잘 됐다. 남는 시간에 수익성 높은 영업에 역량을 집중하자”라고 생각했다. 효율성 제고를 위해 지점당 인원을 줄이고, 단순 업무들은 대부분 중앙집중화했다.

하지만, 일은 생각처럼 잘 되지 않았다. 고객들이 지점에 오지 않으니 영업의 기회 자체가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고객 충성도도 떨어졌다. 고객들은 조금이라도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하는 은행이 있으면 서슴없이 거래를 옮기기 시작했다.

 

어디서부터 문제였을까?

너무 당연하고 시스템화 되다보니 간과하기 쉬웠는데, 소매 금융에서 돈이 안되는 단순 거래와 돈이 되는 영업은 애초부터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어머니들이 일주일에 몇 번씩 왔다갔다 하며 일상적 거래를 처리하다 보면 직원들과 얼굴을 익히고, 대화도 나누고, 차도 얻어마시고 하면서 인간적인 관계와 신뢰가 형성되기 마련이다.

그렇게 거래를 유지하다 보면 고객이 좀 더 부가가치가 높은 거래를 필요로 할 때가 꼭 생긴다. 목돈이 생겨 예금/투자 니즈가  생긴다던가, 지인의 좋지 않은 일을 전해듣고 보험을 들어야 겠다는 생각을 한다던가, 집을 사게 되어 대출이 필요하다던가… 이 경우 고객은 평소 안면이 있는 직원에게 가서 상담을 받게 되고, 상담이 거래로 이어지면서 지점에 수익을 발생시키게 된다. 이 때 발생된 수익은 그 전까지 이 고객의 단순 업무 처리에 들였던 비용을 모두 상쇄하며, 남는 부분이 지점의 초과 이익이 되는 구조이다.

 

 

어떤 지점에 하루에 고객이 100명쯤 방문한다고 치고, 평균적으로 열 번 중 한 번 꼴로 ‘돈 되는’ 거래가 일어난다고 생각해보자. 지점 입장에서는 매일 90명에 대해서는 단순 거래를 처리해주느라 비용이 좀 더 들겠지만, 10명 정도 ‘돈 되는’ 거래를 발생시킴으로써 이를 만회하고 수익을 낼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90명과 10명은 같은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그동안 단순 거래만 한 고객이 당장 내일 ‘돈 되는’ 거래를 할 수도 있고, 오늘 ‘대박’ 거래를 해 준 고객이 앞으로 몇 달 동안 의미있는 거래를 하지 않을 수도 있다. 지점 입장에서는 90명이 일으키는 단순 거래가 귀찮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이것이 없이는 10명의 ‘돈 되는’ 고객도 없어지는 것이 당연하다.

단순 거래로부터 시작되는 인간적인 ‘관계와 신뢰’야말로 지점이 창출하는 부가가치의 시발점이었다. 인터넷 뱅킹의 발달로 인해 이것이 사라지면서 지점의 존재 이유가 조금씩 위협을 받게 된 것이다.

 

물론, 은행들이 이런 문제에 대해 손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

처음에는 비대면 채널에서도 ‘돈이 되는’ 거래를 유도하고자 했다. 한계가 있었다. 오프라인에서는 단순 거래가 고객과 직원 사이의 관계와 신뢰를 형성하며 고부가가치 거래로 이어졌지만, 사람이 없는 온라인에서는 관계와 신뢰라는 연결고리가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옴니채널 전략이 은행권의 유행어처럼 부상했다. 온/오프라인의 다양한 채널을 연계하여 통합적인 소비자 경험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개념은 그럴 듯 한데, 언론 등에 언급된 구체적인 실행방안들을 보면 이 또한 “관계와 신뢰”라는 본질을 파고들지 못하고 있는 듯 하다.

 

 

인터넷 뱅킹을 하다가 상담 니즈가 있을 때 전문상담원을 연결해준다고 해서 생전 처음 얘기하는 직원과 “관계와 신뢰”가 생겨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이 화상 연결이라 해도, 직접 태블릿 들고 와서 상담해준다고 찾아온다 해도, 그들이 사용하는 상품 추천 알고리즘이 아무리 뛰어나다 해도 말이다.

문제의 원인이 “관계와 신뢰”의 상실에 있다면, 그 해결방안도 “관계와 신뢰”의 회복에 있다. 다만 그 방식을 예전과 달리 해야 할 뿐이다. 단순히 상담의 전문성이나 접근성 등을 높이는 것만으로는 별 효과를 보기 어렵다.

 

구체적인 방안에 대해서도 좀 더 적어보고 싶지만, 이 글은 일단 문제제기의 목적에 충실하고 답은 금융권의 실무자들이나 잠재적인 ‘핀테크’ 기업가들에게 맡겨볼까 한다.

‘이런 것은 핀테크가 해결할 성격의 문제가 아니지 않냐?’라고 얘기하실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그럴 수도 있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기술은 모든 중간 과정을 잘라내고 비용을 줄이고 효율화하는데만 그 쓸모가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적인 관계와 신뢰를 되살릴 수 있는 기술, 금융업에는 그런 기술이 필요하다.

 

– 의견 있으신 분들은 댓글 환영합니다.

– 어떤 방법이 되었건 이런 문제들을 좀 더 근본적으로 해결하는데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저랑 좀 만나셔야 합니다 ^^ (tossi90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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