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업과 두 얼굴의 수수료

며칠 전 마이리얼트립(http://www.myrealtrip.com)‘ 이라는 벤처가 투자 유치를 받았다는 기사를 접했다. 이 서비스는 한마디로 현지 가이드와 자유 여행자들이 가이드 서비스를 사고파는 오픈마켓인데, 직접 이용해볼 기회는 없었지만 예전에 한 번 보고 여행업의 변화 추세에 잘 부응한 비즈니스라고 생각했었다.

 

마이리얼트립

마이리얼트립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니, 과거 여행업이 걸어온 길이 Commission 비즈니스에서 Fee 비즈니스로의 진화라는 컨셉에 꽤 잘 들어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수익모델을 유통마진 대신 연회비로 전환한 코스트코 사례에 관심을 가졌듯이, 이 주제가 평소 나의 주요 관심사 중 하나다 보니 이 글을 통해 여행업에 대한 생각을 좀 공유해보고자 한다.

 

※ 여행업에 대한 필자의 지식이 미천한지라, 오류가 있으면 지적 부탁드립니다.

 

 

1. 커미션과 Fee의 차이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먼저 커미션(Commission) 비즈니스 피(Fee) 비즈니스에 대한 개념 설명을 간단히 하고 시작해야 할 것 같다. 먼저 사전을 찾아보자.

 

사전

 

둘 다 ‘수수료’이지만, 비즈니스 모델의 세계에서 이 차이는 굉장히 크다.

커미션이 발생하려면 3가지 주체가 필요하다. 구매자, 판매대리인(브로커), 판매자. 커미션은 판매대리인(브로커)이 고객을 물어 온 대가로 ‘판매자’에게 받는 수수료이다. 넓게 보면 유통업자가 제조사 상품에 붙이는 마진도 이 범주에 넣을 수 있다.

Fee는 심플하다. 고객(서비스 이용자)이 서비스 제공자에게 주는 수수료이다.

비즈니스에 있어서 누구에게 돈을 받는지의 문제는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판매자에게 커미션을 받는 비즈니스는 판매자를 왕으로 모시는 비즈니스이고, 고객에게 Fee를 받는 비즈니스는 고객을 왕으로 모시는 비즈니스다. 문제는 한꺼번에 두 왕을 모시다 보면 그 이해관계가 종종 충돌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다 한 것인가?

 

 

2. 가이드 서비스의 수익모델 

 

자,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 우리나라에서 여행업의 변화 추세에 따라 ‘가이드 서비스’의 수익모델이 어떻게 바뀌어 왔는지 생각해보자.

 

1단계: 단체관광

우리나라에 해외여행 바람이 불기 시작한 80년대, 해외여행은 곧 ‘단체관광’을 의미했다.

 

단체관광

 

단체관광은 자유도가 떨어지는 대신 안전하고 효율적이다. 단체관광에서도 가이드 서비스는 여행의 질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하지만, 가이드 서비스에 대해 흔쾌히 수수료(Fee)를 지불하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이 문제였다.

여행사가 가이드비를 상품 가격에 포함시켜 받은 후 가이드에게 지급했더라면 좋았겠지만, 가격 경쟁에 몰두한 여행사들은 편법을 썼다. 상품 설명에 ‘가이드팁 별도’라고 한 줄 적어놓고는 현지 가이드에게 ‘당신 몫은 현지에서 능력껏 받아’라고 해버린 것이다.

서비스에 대한 개념이 희박하고, 깎고 아끼는 것이 생활화된 초기 여행객들에게 Fee를 받아내야 하는 가이드는 아주 곤욕스러웠을 것이다. 가이드’팁’이라고 하니 굳이 안줘도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짠돌이부터, 팁을 무기로 온갖 무리한 부탁을 하는 사람, 좀 깎아보자고 흥정을 하는 사람…

그래서 나온 우회책이 쇼핑, 선택관광 같은 것이었다. 어차피 관광객들은 쇼핑 니즈가 있고 상점들은 모객 니즈가 있으니, 가이드는 관광객들의 구매액에 비례해서 점주에게 커미션을 받아 충분히 받지 못한 Fee를 충당할 수 밖에 없었다.

 

2단계: 자유여행

일반적으로 커미션 모델은 구매자와 판매자(혹은 브로커)의 이해관계 불일치와 정보의 비대칭성 때문에 여러가지 부작용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과거에는 가이드의 트랙레코드 관리도 어려웠기 때문에 업계에 신뢰가 형성되기 어려운 구조였다. 가이드가 상점과 짜고 손님에게 바가지를 씌운다던가, 원치 않는 고객에게도 ‘선택 관광’을 가도록 온갖 압력을 가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벌어졌다.

처음 한 두번은 모르고 속던 여행객들도 이처럼 기분나쁜 경험이 반복되다 보니 가이드 서비스를 불신하게 되었고, 결국 그 필요성을 부정하기에 이른다. 가이드 없는 ‘자유여행’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배낭여행’, ‘호텔팩’, ‘에어텔’ 등은 모두 이 ‘자유여행’의 분파들이다. 인터넷이 발달하다 보니 여행사를 이용하지 않고 온라인 ‘다이렉트’ 방식으로 직접 항공사 및 호텔과 컨택하여 모든 것을 해결해버리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90년대의 추억, 배낭여행

 

물론, 자유여행의 약진을 전적으로 단체관광에 대한 반작용으로 해석하긴 어렵다. 다만, 효율과 안전보다는 자유와 도전을 좋아하고, 주머니 사정은 넉넉치 않지만 영어가 얼추 되서 가이드 없이도 살아남을 수 있는 젊은층이 여행업계의 새로운 고객으로 떠오르면서 여러가지 부작용이 큰 가이드 서비스에 대한 니즈가 상대적으로 줄어들었다고 볼 수는 있을 것이다. 인터넷과 커뮤니티의 발달은 가이드가 제공하는 여행정보를 대체하는 역할을 했다.

가이드 서비스에 대한 니즈 감소는 어떻게 보면 커미션 모델을 지나치게 남용한 업계의 자업자득이라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여행객들이 여러가지 기분나쁜 강요를 받게 된 이유는 그들 스스로가 가이드 서비스에 대해 정당한 대가를 지급하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다. 물론, 서비스 수수료에 기반한 선순환 시스템을 만들어내지 못한 여행업계에도 책임이 있다.

 

3단계: 독립 가이드 서비스

자, 오랜 시행착오를 거쳐 드디어 성숙한 Fee 모델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합리적인 가격에 전문적인 가이드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이 생겨났고, 소비자들은 이런 가이드 서비스에 대해 직접 Fee를 지불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미 상당히 유명해진 유로자전거나라, 그리고 앞서 언급한 마이리얼트립과 같은 업체의 성장이 이러한 변화를 대변한다.

 

유로자전거나라

유로자전거나라

 

고객이 생각을 바꿔 Fee를 기꺼이 지불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예를 들어보자. 가이드 서비스의 가치를 크게 실감하지 못했던 한 자유여행객은 유럽의 한 박물관에서 충격적인 경험을 한다. 우연찮게 옆에 있던 한국인 전문 가이드의 설명을 귀동냥했다가, 역사와 문화에 대한 그의 해박한 지식과 입담에 빠져든 것이다. 그의 설명을 듣고 나니 지금까지 자신은 아무것도 모르고, 마치 까막눈으로 책을 보듯 여행을 다녔다는 사실을 깨닫고 깊이 후회한다. 이 여행객은 앞으로 가이드 서비스의 품질만 보장된다면, 기꺼이 돈을 좀 써야겠다고 마음을 먹게 된다.

이런 고객의 의식 변화를 이끌어냈던 데에는 가이드 업계의 혁신이 큰 역할을 했다. 과거 왜곡된 커미션 모델의 여러가지 부작용으로 인해 비난을 받고, 그 대가를 치르는 과정을 거치면서 업의 본질, 즉 고객에게 제공하는 본연의 안내/설명 서비스로 차별화해야 한다는 반성이 있었던 것이다. 과거에는 어떻게 하면 고객에게서 커미션을 많이 빼먹을 수 있을까 궁리했다면, 이제 어떻게 하면 전문성을 키워 만족스러운 가이드를 제공할 수 있을지를 고민했고, 결국 고객에게 가이드 서비스 고유의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유로자전거나라는 자체적인 기준에 따라 가이드 서비스의 품질을 보장했고, 마이리얼트립같은 오픈마켓은 가이드의 트랙레코드를 축적하여 공개함으로써 품질을 관리한다.

 

(유로자전거나라는) 싸지만 감동 없는 단체 여행, 자유롭지만 두려운 개별 여행. 이 둘의 장점을 빼다 만들었다. 안전하면서도 감동 있는 자유 여행! 장백관 대표는 그 시장을 개척했다. “여행업의 시피유(CPU)는 가이드에 있다”라는 상식에 근거한 결과다.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현지 유학생이나 상인을 ‘알바’로 일시 고용, 보수는 각자 해결. 대개 여행 현장에서 관광객을 통해 요령껏 조달해야 하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예정에 없던 옵션 투어, 꼭 들러야 하는 쇼핑센터ㆍ식당, 노골적인 팁 요구 등이 횡행하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가이드는 정보보다는 유머, 주마간산격 유적지 소개와 사진 찍어주는 인솔자 정도로밖에 기억되지 않았다.

하지만 자전거나라의 가이드는 이 모든 걸 하지 않는다. ‘가이드 투어’라는 전문성으로 승부를 걸었다.

“유로자전거나라 – 유럽 여행의 글로벌 강소기업 “고객은 인생 동반자””

 

유로자전거나라의 프랑스 투어 프로그램

유로자전거나라의 프랑스 투어 프로그램

 

 

3. 사업모델의 진화와 그 시사점 

 

지금까지 여행업 비즈니스 모델의 세가지 유형에 대해 살펴봤는데, 주의해야 할 점은 각 단계별 변화에 있어 반드시 새로운 모델이 이전 모델을 ‘완전히’ 대체하면서 업계의 ‘주류’로 부상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전 모델은 성장이 둔화되거나 약간 위축될지언정, 여전히 건재하고 있다. 최근 몇 년간 3단계 모델이 빠르게 성장했지만, 1단계 모델인 ‘단체관광’과 2단계 모델인 ‘자유여행’은 나름의 서비스 개선을 통해 여전히 시장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진화의 과정에서 확보된 사업 모델의 다양성은 정교한 고객 Customization을 가능케 해준다. 각 모델이 그 강점을 가장 잘 발휘할 수 있는 영역에 특화함으로써 고객 가치를 증가시키는 것이다. 예를 들면, 교통 등 여행 인프라가 잘 안되어 있거나 치안이 불안한 지역에서는 ‘단체관광’이 여전히 강점을 가지고 있으며, ‘휴양’ 목적의 고객이 인프라가 좋은 지역으로 여행을 갈 때는 ‘자유여행’이, 역사와 문화에 대한 체험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유럽의 경우 ‘독립 가이드 투어’가 고객에게 더 큰 가치를 제공할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여행업계가 걸어온 길과 그 과정에서 얻은 교훈들은 많은 다른 업계에서도 참고할 수 있는 일반성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여행업의 역사에서 관찰할 수 있었던 일련의 변화, 즉 △상품과 서비스의 융합, △전통적 사업 모델의 성장성 둔화, △수익모델의 왜곡에 따른 부작용 심화, △서비스 수수료에 대한 고객 의식의 전환, △서비스 모델의 다양화를 통한 고객 세분화 등의 흐름은 오늘날 거의 모든 산업 분야에서 공통적으로 찾아볼 수 있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다만,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 할 차이점은 변화의 속도이다. 오늘날처럼 정보가 자유롭게 이동, 편집, 저장되고, 적은 비용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는 플랫폼 인프라를 구축할 수 있게 된 시대에는 여행업에서 수십년 동안 진행되어 온 변화가 불과 수 년만에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국내 소비자들의 서비스 수수료에 대한 인식이 높아진 것도 변화의 속도를 빠르게 하는 원인이다. 코스트코를 비롯한 각종 회원제 서비스, 헬스클럽의 개인 PT 서비스, 유로자전거나라와 같은 가이드 서비스 등이 비슷한 시기에 빠르게 성장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글의 마무리는 몇가지 질문으로 대신하는 것이 좋을 듯 하다. 같이 한 번 생각해보자.

 

  • 우리의 비즈니스는 커미션 모델인가? Fee모델인가? 아니면 혼합형인가?
  • 우리가 속한 산업은 여행업으로 치면 어떤 단계까지 와 있는가?
  • 고객은 우리의 서비스를 신뢰하는가?
  • 커미션형 수익모델 때문에 서비스에 문제가 생기고 있지는 않은가?
  • 다이렉트 모델이 부상하고 있다면, 그 이후에 나타나게 될 변화는 무엇일까?
  • 서비스(Fee)에 집중하는 새로운 경쟁자들이 나타나고 있는가?
  • 여러가지 유형의 비즈니스 모델이 가진 각각의 장단점은 무엇인가?
  • 우리의 강점정체성은 무엇이며 앞으로 어떤 모델을 택해야 하는가?
  • 단일 회사가 여러가지 모델을 동시에 영위하는 것이 효과적인가?
Advertise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