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결해야 할 문제가 무엇인가?

어딜 가나 그런 사람이 있다.

국가, 학교, 회사는 물론이고, 심지어 친척이나 가족처럼 같은 공동체에 속해 같은 경험을 공유하면서도 전혀 다른 세계에 사는 것처럼 느껴질 만큼 나와는 상당히 다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물론, 같음과 다름 사이에 무수한 스펙트럼이 있음은 당연하지만, 정치적 영역에서 이러한 차이는 대개 보수와 진보 두 가지 정당으로 대표되는 듯 하다.

가치관과 생각의 틀이 완전히 다른 사람들로 이루어진 두 정당이 생산적인 논의를 통해 국가를 운영해 나가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 어떤 나라에서는 서로 죽고 죽이며 비극의 역사를 계속하기도 하지만, 어떤 나라에서는 서로 경쟁하기도 하고 협력하기도 하면서 꽤 잘 해나가는 경우도 있다.

그럼 잘 되는 나라의 비결은 무엇이고, 안 되는 나라의 문제는 무엇일까?

여러가지 설명이 가능하겠지만, 지극히 실용적인 관점에서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성공 비결은 ‘해결해야 할 공통의 문제’에 집중하는 것이다. 반대로 실패의 원인은 ‘서로의 다름’에 대해 다투는 것이다.

아무리 뇌 구조가 달라서 친해지기 어려운 사람이라 하더라도, 눈 앞에 있는 공통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를 놓고는 충분히 생산적 논의를 통해 합의된 결론에 이를 수 있다. 오히려 문제 해결에 있어서는 뇌 구조가 다른 사람들끼리 붙여놓는 것이 훨씬 균형잡힌 결론을 도출하는 경우가 많다.

서로의 다름에 대해 논하는 것은 굉장히 비생산적이다. 다른데 뭘 논의한단 말인가. 다름을 다투는 것은 상대방의 존재 자체를 공격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힘의 우열만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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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알고 있듯, 우리는 지금 엄청난 문제에 직면해 있다.

분노와 슬픔을 가슴에 묻고 이제 우리의 부실한 시스템을 개선하기 위한 이성적인 논의를 시작해야 하는 시점에, 논의의 양상이 공통의 문제에 집중하기보다는 서로의 다름을 부각시키고 서로의 존재를 부정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 같아서 걱정이다. 늘 그렇듯 이런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은 항상 양쪽의 극단이다.

다른 문제도 아니고 이런 기본적인 안전에 대한 이슈는 양쪽이 충분히 같은 공감대에서 출발할 수 있다.
다른 문제도 아니고 이런 이슈는 서로의 다름이 아니라 문제에 집중하고 함께 해결책을 논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권 교체만이 답이라는 생각은 문제의 근본적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훌륭한 리더가 나타나 정권 교체에 성공하고 제대로 된 시스템을 만들었다 치자. 5년, 운이 좋다면 10년쯤 좀 더 안전한 삶을 누릴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만든 시스템도 또다른 정권 교체에 의해 일순간 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일방의 권력에 기반하여 구축한 시스템은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권력과 함께 사라지기 쉽다.

그러니, 진정 우리의 아이들이 안전하게 자랄 수 있는 영구적인 시스템을 만들고 싶다면, 아무리 서로가 말이 안통하는 꼴통처럼 느껴지더라도 함께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책을 도출해야 한다. 이렇게 만든 시스템은 정권이 바뀌어도 좀처럼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불안하면 눈을 똑바로 뜨고 감시하자. 몇 년에 한 번씩 선거해서 뽑아다 놓고 나몰라라 하는 사이에 공들여 만든 시스템은 무너진다.

집안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돌쇠를 쓰느냐 마당쇠를 쓰느냐의 논쟁은 문제 해결에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문제가 재발하지 않게 제대로 해결하고 싶다면, 돌쇠 혹은 마당쇠가 마음에 안들더라도 둘 다 쓰지 않으면 안된다.

자, 이제 돌쇠와 마당쇠에게 묻자. 우리가 함께 해결해야 할 문제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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