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화를 원한다면 결과를 책임져라

흔히들 금융상품은 차별화가 어렵다고들 한다. 동의한다. 상품 구조만 그대로 복제하면 쉽게 유사한 상품을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최근 애플-삼성 소송에서도 볼 수 있듯 다른 산업에서도 복제 문제가 발생한다. 일반적으로 복제에 대응하는 방법은 대략 다음과 같은 듯 하다.

  • 특허를 통해 법적인 보호를 받는다.
  • 브랜드를 통해 감성적 가치를 강화한다.
  • 끊임없는 혁신을 통해 늘 경쟁사보다 한 발 앞서 나간다.

문제는 금융업에서는 위와 같은 방식으로 대응하기가 쉽지가 않다는 것이다.

법적 보호에 있어서는 비즈니스 모델 특허라는 제도가 있다고는 하는데 제대로 기능을 하지 못하는 것 같고, 브랜드를 통해 감성적 가치를 주려면 ‘나는 이 브랜드를 쓴다’고 남들에게 보여주는(자랑하는) 효과가 있어야 하는데, 실체가 없는 금융상품으로 이런 효과를 내기는 쉽지 않다.(그나마 신용카드 플레이트 정도?)  끊임없는 혁신도 산업 자체의 변화 속도가 느린 금융업에 있어서는 한계가 있다.  이렇게 생각하면 틈새 시장이나 라이센스가 필요한 아주 제한된 분야를 제외하면 차별화된 금융상품을 내놓기 위해 머리를 짜내고 노력하는 것은 좀 낭비가 아닌가 생각이 드는 것이다.

현대카드 블랙

.

금융업에서 상품 차별화가 어렵다면 도대체 무엇으로 차별화해야 할까?
아마도 다음 두가지가 아닐까 싶다.(크게 보면 전자가 후자에 포함되는 것 같다)

  • 고객에게 상품을 전달하는 방식
  • 고객이 상품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결과

.

먼저, 상품 전달 방식을 차별화하는 것이다. Customization을 더 잘하자는 것이다.

상품의 종류별로 차이가 있긴 하지만 일반적으로 금융상품은 다른 상품에 비해 개인화가 더 중요하다. 똑같은 금융상품이라 할지라도 어떤 사람에게는 매우 좋은 선택이 될 수 있는 반면, 다른 사람에게는 잘못된 선택이 될 수 있는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장기상품과 단기상품, 분리과세 등 세제혜택 여부, 중도 인출 가능 여부, 각기 다른 혜택의 신용카드, 펀드의 수수료 구조 등)  실체가 없는데다 조금만 복잡해지면 일반적인 고객이 이해하기가 어려운 것이 금융상품인 만큼, 상품 자체의 차별화가 어렵다면 개개인의 재무상태와 투자성향, 금융상품 이해도, 라이프스타일, 가치관 등에 따라 가장 적합한 솔루션을 제공하여 만족도를 높이는 데에서 차별화 포인트를 찾는 것이 더 효과적일 것이다.

이걸 잘 하려면 금융회사 직원이 회사의 이해관계와 상관없이 전적으로 고객의 편에 서서 고객의 이익을 위해서만 조언을 해주는 것이 중요한데, 대부분 상품 판매(혹은 거래)에 따라 수익이 결정되는 인센티브 구조를 가진 우리의 금융상품 판매 시스템 하에서는 이게 쉽지는 않다. 이에 대해서는 예전에 쓴 포스팅에서 자세히 언급한 바 있어서 생략한다. (링크: 누구를 위한 금융전문가인가?)

이쯤에서 잠깐 회사 광고

.

차별화를 위한 또다른 방법은 고객이 상품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결과를 차별화하는 것이다. 헬스클럽을 예로 들자면 쾌적한 환경, 최신식 운동기구, 잘생긴 코치(?) 등에 투자하는 것이 상품을 차별화하는 쪽이라면, 개인화된 운동 프로그램, 엄격한 식단 관리, 밀착식 고객 관리 등에 투자하는 것은 고객이 헬스클럽 등록을 통해 궁극적으로 얻고자 하는 결과(체중감량, 몸만들기, 건강)를 차별화하려는 노력으로 볼 수 있다.

생각해보면 우리 주변에는 상품을 구입하기만 하면 원하는 결과는 당연히 뒤따라오는 것처럼 착각하게 만드는 마케팅 활동들이 엄청나게 많다. 헬스클럽에 등록하면 금방 다이어트나 식스팩 만들기에 성공할 수 있을 것 같고, SUV를 사면 금새 가족들과 함께 아웃도어 라이프를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특정 화장품을 쓰면 광고에 나오는 연예인처럼 동안 미모를 가질 수 있을 것 같고, 어떤 향수를 쓰면 멋진 이성을 꼬실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소비자들도 이성적으로는 그것이 환상이라는 사실을 안다. 하지만, 감성적으로는 누구에게나 그런 믿음을 포기하고 싶지 않은 심리가 있고, 기업들은 은연 중에 소비자들의 이런 심리를 파고들어 제품을 사게 만드는 것이다.

실제로는 상품을 구매하는 것과 구매한 상품을 사용해서 원하는 결과를 얻는 것 사이에는 상당히 큰 갭이 존재한다. 헬스 클럽에 등록한 사람들 중 원하는 만큼 다이어트에 성공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많은 사람들이 억지로 몇 번 나가다가 결국에는 신발장에 보관해 둔 신발도 못 찾아온다. 은퇴 후를 대비해야 한다는 생각에 장기 보험 상품을 가입한 사람 중에 중도해약을 하지 않고 만기까지 보험금을 불입해서 원하는 결과를 얻는 사람의 비율이 얼마나 될까? 장기 저축성 보험의 3년 이내 해약률이 45%라는 기사로 미루어 짐작해보면 생각보다 많지는 않은 듯 하다.

관련 기사

.

지금까지 대부분의 기업들은 이같은 구매와 결과 사이의 엄청난 갭을 고스란히 고객이 책임질 영역으로 돌렸다. 다이어트에 실패해도, 보험을 중도해약해도 그 책임은 고객에게 있는 것이지 기업에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기업을 비난하자는 의도는 아니다. 다만, 하고 싶은 말은 기업이 소비자가 전적으로 짊어지고 있는 책임을 조금만 덜어주려 한다면, 그 댓가로 상당한 부가가치와 차별화 포인트를 창출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이다.

사례는 이미 많은 업종에서 찾아볼 수 있다. 헬스클럽만 봐도 초기에는 넓은 공간, 최신식 시설 등 제품으로 경쟁을 하다가, 평준화로 제품 차별화가 어려워지자 가격 경쟁의 레드오션 속으로 들어갔다. 그 와중에 일부 사업자들이 차별화를 통해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었던 계기는 PT(Personal Training) GX(Group Exercise)같은 운동 프로그램이 아니었나 싶다. 개인 트레이닝을 받는 비용은 때론 헬스장 이용료를 넘어설 정도로 비싸다. 하지만, 돈을 들여서라도 이런 서비스를 원하는 사람들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왜? 효과가 있으니까! 즉, 결과를 책임져주기 때문이다.

나이키도 좋은 예다.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나이키는 마이클 조던 등 수퍼스타를 활용한 마케팅을 많이 펼쳤다. 소비자들이 농구화를 신고 축구를 하건 달리기를 하건 별로 상관하지 않았다. 멋진 제품을 만들고, 수퍼스타 마케팅을 통해 제품을 밀어내면 그것으로 끝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요즘 나이키를 잘 관찰해보면 수퍼스타 마케팅의 비중은 쪼그라들고, 그보다 책임(?) 마케팅, 애프터서비스(?) 마케팅에 더 중점을 두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구매 단계에서부터 용도나 발 모양, 보행 습관 등에 맞는 제품을 구입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NIKE+’ 같은 스마트폰 앱을 통해 운동을 매개로 한 커뮤니티 형성을 촉진하기도 한다. ‘Fuelband’ 처럼 매일 운동량을 관리해주는 스마트기기를 출시하고(갖고 싶다 ^^;;), ‘We Run Seoul’이라는 이름으로 무려 3만명이 참여하는 대규모 달리기 행사를 개최한다. 이 모든 활동을 통해 나이키는 고객이 궁극적으로 원하는 결과인 ‘운동'(not ‘운동화’)을 더 잘 할 수 있도록 책임을 분담하고 있는 것이다.

나이키 플러스

나이키 퓨얼밴드

We Run Seoul(2011)

.

오래된 예이긴 하지만, IBM도 마찬가지다. 과거 ‘제품’을 생산하던 IBM은 고객이 자기네 제품을 어떤 프로젝트에 사용하는지, 사용시 어떤 장애에 부딪치게 되는지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경기침체와 주력 제품의 수요 감소로 존폐의 위기까지 몰린 IBM은 제품을 파는게 아니라 고객이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솔루션’을 파는 기업으로 업그레이드에 성공함으로써 재도약을 할 수 있었다.

흔히 얘기하는 ‘제품의 서비스化’. 즉, 제품이 아니라 서비스를 팔아야 한다는 말도 여기서 얘기하는 ‘결과를 책임져야 한다’는 말과 결국 같은 뜻이다.

.

만약 금융회사가 상품이 아니라 결과를 차별화하겠다는 전략을 제대로 추진해 나가면, 정말 많은 것이 달라질 것이다.

고객에게 금융상품을 권하는 프로세스도 달라질 것이고, 고객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면 그것이 회사에 이익이 된다고 하더라도 바로잡아줄 것이다. 그리고 상품 판매 이후에도 고객이 상품 가입시에 계획했던 대로 이행을 잘 할 수 있도록 관리해주는 시스템이 구축될 것이고,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실시하다가 계획 이행에 변수가 생겼을 경우 수정된 계획까지 제안하고 관리해 줄 수 있는 메커니즘이 마련될 것이다.

.

너무 어려운 일이라고?

그럼 차별화를 포기하면 된다. 괜히 엄한데 힘 뺄 것 없이 가늘고 길게 가는거다.
출혈경쟁 속에서, 점점 쪼그라드는 미미한 마진에 생존을 의지하면서 말이다.

.

.

참고자료: 새로운 자본주의 선언, 우메어 하크, 2011 (나이키 사례 등)

Advertisements